거리로 나간 여성들 : 생계 전선에서 시작된 여성 노동

전쟁은 여성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여군, 간호사, 참전용사의 아내 혹은 어머니로 흔히 호명되는 여성은 익숙하거나 낯선 모습으로 그려질 때가 많다. 총을 들고 전장에 나간 여학생의 이야기는 용기를 주고, 소식 끊긴 남편에게 보낸 아내의 편지는 감동을 준다. 그리고 이러한 장면들은 카메라에 담겨 전쟁의 모습을 증언하는 자료가 된다.

6·25전쟁 시기 한국에서 촬영된 사진들에는 다양한 여성의 모습이 담겨 있다. 비교적 잘 알려진 군인이나 간호장교 외에도 여러 분야에 진출한 여성들을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전쟁기념관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사진 자료들에는 한국 민간인 여성뿐 아니라 유엔군 또는 국군 정훈대대 소속 종군기자로 정전회담 현장에 참석한 여성들, 미국 여성육군단(WAC) 소속으로 한국에서 활동한 여성 장병들의 사례가 발견된다. ‘소녀' 역시 자주 등장한다. 소녀가장, 유엔군 행사에 동원된 소녀 이미지도 우리가 기억하는 전쟁의 한 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진들은 우리가 기억하는 전쟁의 사건 그 이면을 보여준다.

6·25전쟁 중에도 계속된 일상 풍경에는, 이를 유지하기 위해 분투한 사람들의 생활상이 담겨 있다. 피난길에도 생계가 중요했고, 아이가 자랐으며,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장이 열렸다. 이 글은 그러한 일상을 부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당대 여성의 삶에 주목한다. 전장 밖의 여성들은 생존의 최전선에서 노동하고, 생산능력이 없는 가족을 ‘먹여 살렸’다.

전쟁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는 여러 아카이브 자료에는 독을 머리에 이고 걸어가는 여성들, 거리에 좌판을 깔고 채소나 음식을 파는 여성들, 논밭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모습 등이 포착된다. 1950년대 전쟁 시기 한국에서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생계전선에서 시작된 여성의 경제 활동과 노동의 특징을 소장 자료를 통해 살펴본다.


가는 곳이 장날

가정의 생계를 책임졌던 많은 여성은 행상을 다녔다. 상설 시장이나 점포 장사의 기회는 일부에게만 주어졌다.
행상은 특별한 기술이나 자본 없이 시작할 수 있었으므로, 실제로 거리에 좌판을 깔거나 봇짐을 이고 다니며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독을 이고 지고

전쟁 당시 미군 등이 촬영한 사진에는 머리에 독이나 바구니를 이고 거리를 다니는 여성들의 모습이 남아 있다.
행상을 다닌 여성들은 농사철 잉여 곡식이나 채소 따위를 무거운 독에 넣고 다녔고, 이를 장사의 밑천으로 삼았다.
이들에게 전쟁의 기억은 늘 무거운 짐과 함께 한 고된 피난길이기도 했다.

“그냥 옹기, 저런 단지 같은 거 그냥, 저런 큰 단지 있잖아유. 저 부강서, 그래서 이 다리를 그래서 못 쓰는 거 같어.
그냥 세 걸음(빠른 걸음)을 한 겨. 저기 하나 갖다놓구, 여기 하나 갖다놓고, 또 가고, 여기다 갖다놓고 또 가고.
그래 인자 그놈을 이고 산비탈루 이렇게 생긴디를 댕기면서. 그때만 해두 보리, 겉보리, 그거 받아다 또  그 놈(보리) 내가지고(팔아기지고) 장사 밑천을 하구…
그렇게 해서 그것들 멕여 살렸어유.” (박광자 구술)1


거리 위의 여성 상인들

생존을 위해 나선 거리였지만, 밑천에 따라 생존의 도구는 달랐다. 사진 속 투박한 좌판 위의 품목들은 당시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생계 수단이자 그 시절 고단한 형편을 보여준다. 최소한의 자본금이 있던 여성들은 쌀이나 옷 장사를 했지만, 그렇지 않은 대다수 여성은 배추, 무, 감, 생선, 김치, 땔감, 혹은 자신의 품을 팔아 요리한 빈대떡이나 풀빵 등을 팔아야만 했다.

“쌀도 남으면은 장에 가서 팔고, 아무거나 갖다 팔았어, 그냥. 무수에다 그냥 채소 같은 것도 팔고. 그래 돈 할라고.” (한복순 구술)2


바늘로 잇는 생계

전쟁 이전부터 여성의 주요한 생계 수단이었던 삯바느질은 소일거리에서 가족의 생존을 책임지는 경제 활동으로 변모했다.
겉보기엔 어린 자녀를 돌보며 안방에서 할 수 있던 생계 노동의 형태였으나, 실상은 노동과 휴식 시간의 경계 없이 바늘을 움직여야만 했던 고된 노동이었다.

”이놈의 바느질은 밤낮이 없네요. 저녁에라도 편히 쉬어보면 살것어.” (이태순 구술)3


돌봄과 노동 사이에서

어린아이를 업은 채 좌판에 앉은 여성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자녀 양육과 경제 활동을 병행하는 그녀들의 모습은 흔히 '강인한 어머니'로 묘사되곤 한다.
그러나 이들은 단순한 모성의 관점을 넘어 전후 사회와 가정을 지탱한 주체적인 노동 인력이었다.

“하나 업구, 작은 것은 업구 큰 것은 할머니한테 맡겨놓구, 그러구 다니면서 그냥 했슈.
그렇게 해가지구 벌어먹구 그냥 그렇게 살었어요.” (윤철희 구술)4

“[아들을] 일하는 데 덷구 가가 일하고,
안 그라면 집에 놔두면 동네 아들하고 같이 놀고.” (서도경 구술)5

마치며

거리를 채웠던 여성들의 노동은 공식적인 역사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사진 속 여성들의 머리에 인 짐, 길가의 좌판, 등 뒤의 아이, 손끝에 쥔 바늘은 치열했던 삶의 흔적이자 우리의 오늘을 있게 한 장면이다.


미주
  1. 1. 이임하, 전쟁미망인, 한국현대사의 침묵을 깨다, 서울: 책과함께, 2010, 150. 이 글은 6·25전쟁을 다양한 관점으로 연구해 온 이임하의 전쟁미망인 구술사 연구를 중요한 자료로 참조했다. 6·25전쟁기 전쟁미망인의 경험과 생계활동에 관한 연구는 이 외에도 윤정란(2007), 김은경(2020) 등이 있으며, 자세한 내용은 참고문헌을 참조. 전쟁기념관은 2020년 6·25전쟁 70주년 특별기획전 《사람을 만나다》 전시를 통해 전쟁미망인의 삶을 조명하기도 했다.
  2. 2. 이임하, 앞의 책, 149. ; 전쟁기념관, 6·25전쟁 70주년 특별기획전 : 사람을 만나다 전시 도록, 전쟁기념관 오픈아카이브, 2020년 게시, 2025년 11월 7일 검색,
    https://archives.warmemo.or.kr:8443/exbi/spcl/exbiSpclDetail.do?MID=UM00019&archvNttNo=3724&pageIndex=1#detail_summary05 p.89.
  3. 3. 이임하, "‘전쟁미망인’의 전쟁 경험과 생계활동 - ‘군경(軍警)미망인’을 중심으로", 경제와 사회 0, no.71 (2006) : 15.
  4. 4. 이임하, 앞의 책, 149.
  5. 5. 김은경, "전쟁미망인의 노동 경험과 주체화, 그리고 일상 연대 - 부산·경남지역 전쟁미망인의 구술을 중심으로", 여성과 역사 no.33(2020): 251.
참고문헌
도서 및 단행본
1. 이임하, 전쟁미망인, 한국현대사의 침묵을 깨다, 서울: 책과함께, 2010.
학술지
1. 김은경, "전쟁미망인의 노동 경험과 주체화, 그리고 일상 연대 - 부산·경남지역 전쟁미망인의 구술을 중심으로", 여성과 역사 no.33(2020): 233-267.
2. 양흥숙, 공윤경, "일기를 통해 본 농촌 여성의 일상과 역할", 한국민족문화 no.61(2016): 41-79.
3. 윤정란, "한국 전쟁과 장사에 나선 여성들의 삶 - 서울에 정착한 타지역 출신들을 중심으로 -", 여성과 역사 no.7(2007) : 87-122.
4. 이임하, "한국전쟁과 여성노동의 확대", 한국사학보 no.14(2003): 8-280.
5. 이임하, "‘전쟁미망인’의 전쟁 경험과 생계활동 - ‘군경(軍警)미망인’을 중심으로", 경제와 사회 0, no.71 (2006) : 11-39.
6. 이임하, "한국전쟁이 여성생활에 미친 영향 - 1950년대 '전쟁 미망인'의 삶을 중심으로", 역사연구 8(2000): 9-55.
기타
1. 전쟁기념관, 6·25전쟁 70주년 특별기획전 : 사람을 만나다 전시 도록, 전쟁기념관 오픈아카이브, 2020년 게시, 2025년 11월 7일 검색, https://archives.warmemo.or.kr:8443/exbi/spcl/exbiSpclDetail.do?MID=UM00019&archvNttNo=3724&pageIndex=1#detail_summary05

작성자 : 이진선, 김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