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기 한국에 파견된 참전 군인들은 주둔지 곳곳에서 자신들에게 낯선 한국의 풍경을카메라에 담았다. 그들의 사진에는 전쟁 중에도 일상을 이어가던 사람들, 그리고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문화유산의 모습이 기록으로 남았다.
이들이 남긴 사진에는 이국의 문화와 사람들을 마주한 순간의 솔직한 시선이 담겨 있다.‘낯선’ 이들의 렌즈에 포착된 1950년대 초의모습은, 전쟁 속에서도 존재를 이어간 문화유산의 시간을 보여준다.
낯선 곳, 낯선 이들의 도착
전쟁이 벌어진 한국에는 16개 전투국과 6개의 의료지원국을 포함하여 여러 나라에서 파병된 이국의 사람들이 도착했다.
동방의 작은 나라, 이름마저 낯선 이 땅에서 그들이 마주한 것은 폐허만은 아니었다. 긴 여정 끝에 도착한한국에는 그들의 눈에 ‘낯선’ 일상과 문화가 존재했다. 산자락에 자리한 사찰과 고요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불상들. 이들은 새로운 문화와 마주한 그 순간을 기록하고자 카메라를 들었다.
1952년, 폴 굴드 슐레신저(Paul Gould Schlessinger)는 미 육군 사진병으로 한국에 파병되었다. 그의 임무는 6·25전쟁이 일어난 한국의 상황을 시각적으로 기록하는 것이었다.
전쟁의 현장뿐만 아니라 주변의 일상과 문화유산에도 카메라를 향했다. 그는 새롭게 마주한 순간들을 필름에 담는 동시에 사진 뒷면에는 자신의 감상과 관찰 기록을 함께 남겼다.
“The cave is most interesting; it looks like it was built and then the dirt taken out from underneath it.”
“그 동굴은 가장 흥미롭습니다. 마치 구조물을 짓고 나서 그 밑의 흙을 파내어 만든 것처럼 보입니다.”
그의 관심은 단순히 흥미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처음 마주한 한국의 문화유산을 하나의 기록 대상으로 인식하고, 형태와 부를 심하게 관찰했으며, 때로는 손상된 부분을 근접 촬영하여 남겼다. 이러한 기록은 당시 문화유산이 놓여 있던 환경과 보존 상태를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단서가 되었다.
“One of the 2 or 3 damaged spots unfortunately is right on the front of the pedestal.”
그들이 남긴 사진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외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 문화유산의 모습이 비교적 객관적인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기록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시간 속에서, 한국 문화유산을
바라본 하나의 시선으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