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당시 총성과 포화가 난무했던 물리전(物理戰)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심리전(心理戰)이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종이 비’ 삐라는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심리전의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었고, 두려움의 대상이자 생명과 안전, 희망을 갈구하는 유혹의 수단이었다.
이번 전시는 전쟁 당시 제작된 삐라를 통해 전쟁 속 심리전의 다양한 얼굴을 조명해보았다.
삐라는 원래 벽보를 뜻하는 영어단어 ‘Bill’의 일본어 표현 ビラ(전단지)이다. 우리말로는 ‘전단(傳單)’이 바른 표현이며, 영어로 ‘leaflet’이라 한다.
6·25전쟁 중 생산되어 뿌려진 삐라는 총 1,100여종, 28억장 정도로 추산하고 있으며, 이는 손바닥 정도 크기의 삐라로 한반도 전체를 약 20번 정도 덮을 수 있는 엄청난 양이다.
그렇다면 삐라는 어떻게 제작되어 뿌려진 것일까? 유엔군측 기록을 살펴보면 당시 미국 극동군사령부 정보참모부에서는 심리전과(PWB, Psychological Warfare Branch)를 두어 체제선전, 항복 권유 등의 내용을 담은 삐라를 한국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으로 번역하여 제작하였다. 그렇다면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만들어진 삐라는 어떠한 내용들을 담고 있을까?
삐라는 귀순, 투항, 항복을 원하는 이들의 안전보장과 인도적 대우를 약속하는 증표로 활용되었고, 전선의 냉엄한 공포 속에서 생명 보장과 안전에 대한 강한 유혹으로 작용하였다.
공산군측 안전보장증명서에는 먼저 귀순한 사람들의 안정되고 평화로운 생활을 보장한다는 증표로 사진 등을 활용해 삐라를 제작하였으며, 한국어뿐 아니라 영어, 중국어 등의 언어로 구체적인 귀순 방법을 기재하여 투항이나 항복을 권하였다.
6·25전쟁은 당시 ‘냉전’이라는 국제사회의 흐름 속에서 자유주의와 공산주의가 전면으로 대립한 국제전의 양상을 보였다. 양측은 본인들의 체제를 선전하는 한편 상대 체제를 실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의 삐라를 제작하여 살포했다.
유엔군 측은 공산주의 체제를 ‘사람보다 사상을 우선하는 비인간적 구조’로 묘사했으며, 눈앞에 놓인 현실과 체제의 이상 사이의 간극을 적극 부각했다.
공산군 측은 미군 측 발언과 언론보도 등을 인용하여 “당신은 누구를 위해 싸우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등 전우의 희생과 전쟁 지도부의 안전을 대비시키며 사기 저하와 전장에서의 이탈을 유도하는 내용을 담고있다.
고향과 가족의 내용이 담긴 삐라는 단순히 감정을 자극하는데 그치지 않고, 지금 당장의 생존에 대한 불안과 전쟁 이후 시간들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삐라는 고향과 가족을 소재로 사용하였지만 동시에 전쟁이 인간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고향과 가족을 다룬 삐라는 6·25 전쟁 심리전의 가장 인간적인 얼굴이다. ‘누군가의 아들, 남편, 아버지’로 불렸던 날들을 회상하며, “당신이 떠나온 곳은 어디이고, 누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가?”를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
1950년대는 오늘날처럼 실시간으로 정보가 공유되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삐라는 중요한 정보 전달의 매체로 활용되었다.
전황 소식, 포탄 사진, 공습 예고 등을 담은 삐라는 당시 많은 이들에게 중요한 정보 획득의 수단이자 전쟁에서의 심리적 도구였다.
전쟁 당시 군인 뿐 아니라 민간인들의 피해도 상당했다. 이를 예방하고자 공습 예고 전단은 제작하여 살포하였고, 당시 아군과 민간인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보전달 매체였다.
‘삐라’로 대표되는 심리전은 총성과 포연이 가득한 전쟁의 한복판에서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전장이었다. 짧은 문장이 담긴 종이 한 장은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고, 때로는 전투보다 먼저 항복을 이끌어내거나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기도 했다. 이처럼 심리전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향한 경쟁’이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삐라 한 장 한 장에는 전쟁을 경험한 이들의 고통과 두려움, 희망과 생존 등의 지난한 감정들이 스며 있다. 이는 단순한 선전물이 아닌, 살아남고자 했던 인간의 절박한 감정과 선택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말은 전쟁을 시작하게도 하고, 끝내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이 전시를 나서며,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본다. 6·25전쟁 발발로 부터 7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세상에 남기는 말은 무엇인가?